젊은이들, EU 여권 들고 일자리 찾아 서유럽으로

경제 성장 위해 EU 가입했지만 지역 황폐화 재촉

    

발칸반도 지역의 인구 유출이 현지 경제를 황폐화시키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코로나19 방역 조처 강화에 항의하는 식당 직원들 앞으로 한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지역의 인구 유출이 날로 심해지면서, 이 지역이 유럽의 버려진 땅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까지 줄면서 문자 그대로 텅빈 지역들이 속출하고 있다.

발칸 지역 탐사보도 매체 <리포팅 디모크라시>는 최근 발칸반도 지역의 인구 감소가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특히 불가리아의 인구 감소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불가리아 국립통계연구소의 세르게이 츠베타르스키 소장은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발칸반도의 인구 감소 현실을 늙고, 숨지고, 떠나고라고 표현했다.

발칸반도의 상황 변화는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이 버려지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여권을 확보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유럽연합 28개 회원국과 노르웨이·스위스 등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회원국에 사는 걸로 공식 등록된 불가리아인이 2010년에 308천명이었는데, 2019년에는 89만명으로 늘었다. 이 중 36만명이 독일에 산다. 츠베타르스키 소장은 국외의 불가리아인이 150만명은 될 것으로 추산했다.

다른 나라들은 국외로 진출한 자국민 통계도 제대로 없다고 <리포팅 디모크라시>는 지적했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여러나라로 나뉘면서 복수 여권 소지자가 많아, 외국에서 일하는 발칸반도 사람을 국적별로 분류하기도 힘든 탓이다. 외국으로 이주한 크로아티아 여권 소지자의 20% 정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람이며, 몰도바인은 거의 대부분 루마니아 여권을 이용해 이주했을 것으로 인구통계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나마 돌아오는 사람들은 은퇴 뒤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이 지역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세계은행 2018년 자료를 보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합계출산율은 1.3명이고 크로아티아는 1.5명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2.4)은 물론 기존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구 대체 출산율’(2.1)에도 크게 미달한다. 세르비아(1.5), 불가리아(1.6), 루마니아(1.8)의 출산율도 별로 나을 게 없다.

불가리아의 인구 변화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86896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불가리아 인구는 올해 695만명으로 200만명 가량 줄 것으로 추산된다. 유엔은 불가리아 인구가 2050년에 소련과 동유럽권 붕괴 시기인 1989년보다 39% 적은 539만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몰도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의 2050년 인구도 1989년에 비해 20~45%까지 줄 것으로 유엔은 예상한다. 세르비아의 경우 당장 내년부터 은퇴자가 경제활동 인구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발칸반도 인구 감소는 경제에 다양한 형태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할 사람이 줄자 인건비부터 뛰기 시작했다. 불가리아의 경우 인건비가 한해에 12% 가량 상승하고 있다고 현지 경제학자 게오르기 안겔로프가 전했다. 인건비 상승은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되지만, 외국 기업의 투자 위축까지 유발해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경제 성장을 기대하며 유럽연합에 가입했는데, 인력 유출에 따른 지역경제 황폐화라는 역풍을 맞은 셈이다.

<이코노미스트>과거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루마니아의 아름다운 소도시 리슈노프가 올 여름에는 으스스한 유령마을 같았다외국에 나가면 훨씬 많은 돈을 버는데, 누가 이 작은 마을에서 일하려고 하겠냐고 지적했다. 인구학자들은 유럽연합 통합으로 발칸지역 젊은이들의 기대치는 날로 높아지는데, 각국 정부는 이런 기대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 신기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