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한 ‘400억  쪽지예산’ 논란

● COREA 2014. 11. 18. 17:27 Posted by SisaHan

복지공약 깨고 ‘달 탐사’ 공약은 지켜야?

“2020년까지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11일 ‘쪽지 예산’ 논란에 휘말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1일 국회에서 진행 중인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정부가 ‘400억 달탐사 쪽지 예산’을 들이밀었다고 공개했다.
 국회 예결위원이자 원내대변인인 서영교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는올해 쪽지 예산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정부가 400억 원짜리 쪽지 달탐사 예산을 들이밀었다”고 밝혔다.
 
 서 원내대변인은 “달탐사를 위해 1단계로 3년 동안 약 2천600억원이 필요한데 ‘시작이라도 합시다’ 이러면서 400억원짜리 쪽지를 들이민 것”이라며 “쪽지 예산은 여당도 안 되고, 야당도 안 되고 특히 청와대도 안 되고 정부는 더더욱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어 “달탐사와 관련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위험요소가 많아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위험하다,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우리 기술로만 할 수 없다’고 했다”며 “쪽지 예산을 집어넣은 정부는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로봇 물고기로 4대강을 헤엄치게 한댔는데 지금 로봇 물고기 어떻게 됐나. 4대강을 헤엄치긴커녕 물에 한 번 들어가지 못하고 감사원 감사받고, 이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며 정부의 달 탐사 추진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야당은 정부가 달 탐사 계획을 서둘러 진행하는 데엔 사업의 객관적인 필요성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2월 대선 후보 당시 TV토론에서 “2025년에 달에 착륙선을 보내는 계획을 2020년까지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후 달 탐사 사업은 새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돼 우주 개발 중장기 계획에 반영됐다. 2017년까지 국제 협력을 통해 시험용 달 궤도선을 개발해 발사하고, 2020년엔 한국형 발사체를 이용해 달 궤도선과 착륙선을 자력으로 발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달 탐사 사업을 2020년까지 마치는 게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 7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달 탐사는) 2025년까지도 어려운 게 현실 아니냐”고 묻자, 최 후보자는 “나도 완벽하게 검토한 것은 아니지만, 달 탐사선 자체를 우리 기술로 만든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숙제라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서 원내대변인은 “엉뚱한 달 탐사 예산으로 또 다른 상황을 만들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며 “이 예산을 집어넣을 게 아니라 복지공약이나 지켜서 아이들 교육과 보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충고한다”고 말했다.
< 이유주현 기자 >

 
참사 205일만에 ‘세월호 특별법’ 국회 통과

여당, 하태경 문제제기에 ‘맞장구’
진보당 이상규 ‘격려·큰절’엔 야유
유족들, 국회농성 철수 내일 결정

팽목항 실종자가족도 거처 옮겨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세월호 특별법)이 세월호 참사 발생 205일 만인 7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통과 뒤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는 마지막 순간에도 진상규명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다며,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진실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9일 유가족 총회를 열어 지난 118일간 특별법 제정 농성을 이어온 국회 농성장 철수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여야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참석 의원 251명 중 찬성 212명, 반대 12명, 기권 27명으로 세월호 특별법을 가결했다. 반대표는 모두 새누리당에서 던졌다. 140여명의 유가족들이 본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 표결 직전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반대 토론에 나섰다. 하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은 너무 강력한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새누리당 의원석에서 “잘했어!”라는 맞장구가 나왔다. 그때까지 본회의를 묵묵히 지켜보던 엄마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 의원의 뒤를 이어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개발언에 나서 세월호 특별법의 보완을 주장했다.
이 의원이 “유족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발언을 마치고 유족들에게 큰절을 하자, 새누리당 의원석에선 “당신이나 정치하지 마”라는 야유가 나왔다. 유족들은 말없이 박수를 보냈다.
본회의를 지켜본 김성실(동혁군 엄마)씨는 “(세월호 특별법이) 많이 미흡한 걸 알지만 차일피일 미루면 정말 (진상조사가) 없던 일이 될까봐 불안해서 어쩔 수 없이 (법안 통과가) 되게 했다”며 “(오늘 새누리당 태도를 보면) ‘이것만 해줘도 다행’이라고 생색을 내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탄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처리되는 동안 눈물을 훔치며 지켜보고 있다.

이날 통과된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유가족이 추천한 조사위원장을 비롯한 조사위원 17명이 1년6개월 동안 진상조사 활동을 벌이게 된다. 조사위 활동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특별검사도 도입할 수 있다.
이날 세월호 특별법 국회 통과에 맞춰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도 참사 이후 7개월 가까이 머물렀던 전남 진도체육관을 비우기로 했다. 박정순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진도 군민의 뜻을 마냥 모른 체할 수 없어 임시 거처를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 부근 전남대 자연학습장으로 옮기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 권오복씨는 “진도체육관은 희생자를 기다리는 국민과 가족의 염원이 응축된 공간이다. 진도 군민의 심정을 헤아려 이사하기로 했지만, 이곳을 비운 뒤 국민 관심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을 신설되는 국민안전처에 흡수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가해자의 재산뿐 아니라 제3자에게 숨겨놓은 재산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일명 유병언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됐다.
<서보미 기자, 광주/안관옥 기자>

 

홀연히… 고 신해철 신드롬

● COREA 2014. 11. 4. 16:51 Posted by SisaHan

수술 뒤 닷새만에 숨져‥ 개념의 삶 팬들 애도물결

“하나만 약속해줘/ 어기지 말아줘/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가수 신해철씨가 지난 6월 발표한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 타이틀곡 ‘단 하나의 약속’ 노랫말이다. 앨범 발표 당시 그는 이 노래를 두고 “결혼 전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만든 사랑 노래를 15년 동안 다듬고 매만져 이제야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2002년 결혼 당시 암 투병 중이었던 아내는 이제 완치돼, 9살 딸과 7살 아들을 잘 키우고 있다. 신씨는 “‘어찌 되든 아프지만 마라’는 게 가족과 우리 사회에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아픈 건 그였다. 신씨는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고 다음날 퇴원했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가슴, 복부 등의 통증을 호소하며 20~21일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22일 또다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그날 저녁 3시간여에 걸친 응급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누워 있는 신씨를 향해 많은 이들이 “제발 아프지 말아요”라는 노랫말을 읊조리며 쾌유를 기원했다. 하지만 신씨는 많은 이들의 염원을 뒤로하고 27일 저녁 끝내 숨을 거뒀다. 향년 46.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는 “신해철씨가 이날 저녁 8시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났다”며 “빈소는 28일 오후 1시부터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아산병원의 담당 의료진은 “신씨가 22일 오후 2시께 혼수상태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와 응급수술을 포함한 최선의 치료를 했으나,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씨는 1988년 문화방송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로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무한궤도 이후 솔로 가수, 밴드 넥스트로도 활동하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인형의 기사’, ‘날아라 병아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한국 록 음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동시에 대중화에도 성공한 음악인으로 꼽힌다. 신씨는 최근 6년여 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해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를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넥스트를 재결성해 콘서트를 연 데 이어 새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었다.
 
신씨의 죽음에 많은 동료 음악인들이 SNS를 통해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더 클래식의 김광진씨는 트위터에 “신해철님이 세상을 떠났군요.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2AM의 진운씨는 “아… 말이 안 나온다. 어떻게 이럴 수가”라고 애도했고, 가수 나윤권씨는 “좋은 음악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편히 쉬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시나위의 신대철씨는 페이스북에 “너를 떠나보내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만 해철아 복수해줄게”라는 글을 남겨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25일 “병원의 과실이 명백해 보인다. 문 닫을 준비 해라. 가만있지 않겠다. 사람 죽이는 병원. 어떤 이야긴지 짐작하시라”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신씨의 입원이 의료사고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시중에 돌자 해당 병원이 이를 부인했다.
< 서정민 기자 >


환풍구 올라선 사람들 탓이라고?

● COREA 2014. 10. 21. 14:21 Posted by SisaHan

경기소방본부 소방관들이 17일 밤 주변을 통제한 채 손전등으로 판교 테크노밸리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공공디자인’ 관점에서 알려주마

‘판교 공연장에 있었다면, 당신도 혹시…’
“그러게 뭐하러 올라가?” 판교 사망자 비판이 놓치고 있는 것들
‘행동유도성’ 염두한 공공 구조물 디자인의 사회적 공론화 필요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의 기사 댓글을 중심으로 개인의 과실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애초 사람이 올라가는 곳이 아닌 곳에 무분별하게 올라가 공연을 관람한 사람의 책임이 크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일 한 커뮤니티에는 “시설파괴비용을 물어내도 모자랄 판에 보상금, 치료비, 장례비 지원하려고 하고 있으니 기막히고 한심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곧바로 ‘최다 댓글’ 게시물이 되면서 뜨거운 논쟁 대상이 됐다. 같은 날 오후 2시 기준 네이버 주요기사의 댓글엔 “사망자들의 과실도 만만치 않다”, “보상이 아니라 벌금을 먹여야”, “세월호는 선장과 선원이 나가라고 하지 않아 희생된 거지만 이 사건은 올라가지 말라고 해도 올라가서 떨어진 거다” 등의 댓글이 추천 수 상위에 올랐다.
이런 온라인 ‘악성 댓글’은 사고 피해자들에게 상처가 되고 있다. 부상자 가족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인들 부주의로 당한 사고라고 비판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끼기도 했다. 사고 4일 만에 보상 관련 협상이 마무리된 것도 여론 악화에 기인한바 크다.
현재 인터넷 여론은 한쪽에선 올라간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선 안전요원 하나 두지 않은 주최 쪽과 환풍구 시설 규정을 철저히 하지 않은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두고 어느 한쪽만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부 누리꾼의 냉소적 반응은 사고 뒤 언론들이 일제히 ‘안전불감증’ 관련 기사를 쏟아낸 것과 맞닿아 있다. “환풍구 높이가 규정대로 지어지든 말든 환풍구 위로 올라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 상식”,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에 올라간 사람에게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상식”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합리적인 개인’을 대상으로 둔 책임론이다. 부적절한 공연 관람 문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공공장소에서 공중도덕이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안전선 밖으로 나가는 ‘밉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환풍구 사고의 경우 ‘위험한 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 ‘안전 통제를 따라야 한다’는 합리적인 상식만으로 책임을 개인에게 한정 지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떤 물건이나 구조물이 공공 환경에 놓일 때는 쓰임새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다. 예를 들면, 문의 손잡이는 어떻게 열어야 할지(돌리거나, 밀어서)를 지시하는 형태로 디자인된다. 전등 스위치는 누르기 쉬운 위치에 누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게끔 디자인된다. 구멍이 있다면 뭐가 있나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적당한 높이의 구조물은 위에 앉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복슬복슬하고 귀여운 인형이 있다면 쓰다듬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어떤 사물의 생김새가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을 디자인 용어로 ‘행동유도성’(affordance, 도널드 노먼)이라고 부른다.
2차 세계대전 중 소련군이 사용했던 자동소총은 자주 고장이 났다. 이 자동소총은 탄창이 방석처럼 평평하게 생겼다. 군인들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종종 깔고 앉았다가 소총을 고장냈다. 여객기가 처음 도입됐던 당시엔 에어컨 구멍이 우체통 구멍과 비슷해 자꾸 편지를 집어넣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Designing for People, 1955) 유명 관광지의 동상 등을 보면 튀어나온 코 같은 부분은 손을 타서 반짝거린다. 이런 심리가 이미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동상을 만지지 않는 개인이 합리적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만지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이 붙게 된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볼 때, 해당 환풍구는 화단과 연결돼 있었고, 허리 높이여서 원한다면 언제든 올라설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평소라면 이 정도 높이만으로도 사람들이 잘 올라갈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만, 공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잘 볼 수 있는 높은 장소가 있다면 올라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게 된다. 한두 명이 먼저 올라가서 문제없이 공연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면, 그 뒤로는 군중심리가 작용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나라도 회사 앞에서 공연하면 어디라도 올라가서 구경하고 싶었을 것”(@LG_g****)이라는 고백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한국인들은 인도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하철 환풍구 위를 통행해 온 경험이 지배적이다. 지하철 환풍구는 안전 하중을 계산하기 때문에, 건물 주차장 배기구보다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경험적으로 큰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면 경계심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사고 현장에는 제지하는 안전요원이 아무도 없었지만, 설사 안전요원이 존재했더라도 사람들이 올라섰을 가능성이 큰 것도 이같은 경험적 판단으로 위험성 여부를 재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안전요원이 내려오라고 해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ddae****, 네이트)는 비판도 마찬가지 맥락에서다.


반면 ‘건물 배기구로 쓰이는 환풍구는 지하철 환풍구와 달라 붕괴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면, 사람들은 올라가기 좋게 되어 있어도 올라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에게 구체적인 피해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그 행위를 굳이 선택하지 않는다. 벤치에 ‘페인트 주의’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앉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는 것보다 효과가 큰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공디자인 측면에선 아직 어떤 사물에 대한 경험적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은 상태라면, 첫눈에 봐도 올라갈 마음이 들만한 ‘행동유도성’ 단서를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비슷한 구조물에 문제없이 올라 본 경험이 있을수록, 디자인 면에서 차이는 더욱 선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올라갈 수 없는 5m의 높이의 환풍구나, 구부러진 형태의 환풍구, 아예 올라갈 수 없는 유리벽으로 된 외국의 환풍구 사례 등이 주목받고 있다. 20일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 인터뷰에서 “아예 5m로 높이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사고에선 건물주의 책임만을 따지기도 어렵다. 상식적으로 1.2~1.5m 높이의 환풍구 위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올라가게 될 것을 가정한 설계란, 이번 사고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공연 주최 쪽에서 무대 앞이 아닌 뒤에 환풍구가 위치하게끔 무대를 배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주최 쪽도 환풍구 위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몰릴 것을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소 격한 누리꾼들의 반응에는 해당 행사 실무 담당자인 오아무개(37)씨가 SNS에 마지막 글을 남긴 채 행사 주최의 책임을 혼자 지고 목숨을 끊은 데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도 존재한다.

환풍구에는 사람이 올라서도 되는가? 올라설 수 있다면, 왜 안전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올라설 수 없다면, 왜 아무도 올라가지 못하도록 그 위험성을 널리 알리지 않았을까? 참사 다음에 우선 뒤따라야할 질문은 이러한 구조에 대한 의문과 사회적 공론화 아닐까. 하지만 ‘합리적 개인의 판단’만이 생명을 구하는 사회, 스스로 안전을 알아서 찾아야 하는 사회는 사회의 역할보다 개인에게 지워진 ‘자기방어의 책임’만을 점점 더 무겁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회보단 조금 합리성이 미숙한 개인이라도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정유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