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6.15와 6.25

● 칼럼 2011. 6. 26. 16:20 Posted by Zig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이들을 기리고 그 은혜를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현충일이 6월에 있음도 그 때문이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현충일은 극우보수 진영의 궐기대회 날이 되어버렸다. 야당과 민족화해 세력을 싸잡아 종북세력이자 김정일·김정은 비호세력으로 단정해버리는 극렬 보수 인사들은 이번 현충일에도 진보진영과 야권을 비난하는 데 열중했다. 무상급식을 주장해도 빨갱이이고 4대강을 반대해도 친북이며 반값 등록금을 외쳐도 종북세력이다. 순국영령과 호국열사의 뜻을 독점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그들에게 부여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떤 근거로 민주주의와 민족화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반체제 친북이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현충일의 참뜻이 일부 수구진영에 의해 이념적 공격과 색깔 공세로 덧씌워져 버린 셈이다.

6월의 현충일이 민주진보 진영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계기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외부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것이 현충일의 정신이라면,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통해 미래의 대한민국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6.15의 의미이다. 건국과 호국의 역사와 노력이 소중하고 귀한 것처럼 민족화해와 통일한국을 위한 노력 역시 소중하고 절실하다. 건국과 호국이 북한과의 대결과 경쟁을 통해 가능했다면, 미래의 대한민국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한의 변화를 이뤄냄으로써 통일의 완성이 가능하다. 6.15의 대북 접근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우리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뤄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북정책인 것이다.
따라서 건국과 호국의 정신이 6.15의 정신과 배치되고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인식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역사적 퇴행으로 안내하는 과거지향적 편가르기의 전형이다. 결국 건국과 호국의 성과를 바탕으로 6.15의 정신이 결합함으로써 미래의 대한민국은 온전한 통일국가로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6.15의 역사적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올해 6.15는 그 어느 때보다 초라하고 침체된 분위기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대규모 방북단이나 남북 공동행사는 이제 가능치도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 대신에 민족대결과 남북관계 파탄의 현실을 맞고 있는 현 시기 6.15의 힘은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오히려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6.25 발발 60주년을 전국가적 차원의 대대적 행사로 치러내고 각종 기념사업을 정부 예산으로 거행했다. 동시에 1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의 6.15는 6.25의 그늘에 밀려 볼품없는 민간 차원의 행사로만 치러졌다.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내고 전쟁에서 사수해낸 6.25는 분명 호국과 순국의 핵심이자 토대이다. 6.25의 비극과 교훈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놓고 북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것만으로 6.25가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의 참혹함과 민족상잔의 안타까움을 재확인하고 미래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고 평화체제를 구축해냄으로써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6.25는 발전해야 한다. 결국 6.25의 미래지향적 극복은 6.15의 정신과 접목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고수한 ‘반6.15’의 접근, 즉 남북관계 중단을 통해 대북 제재와 압박으로 북을 굴복시키고 변화시키겠다는 희망적 사고는 완벽하게 실패했음이 이미 드러났다. 북은 괴로워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고 북한의 도발은 오히려 증가했으며 평화는 더더욱 위협받았고 북핵문제는 해결난망의 최악으로 치달았다. 6.25식 접근방법에 올인하는 이 정부의 대북정책이 백전백패의 총체적 실패로 귀결되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건국과 호국을 넘어 대한민국을 완성하고, 6.25의 되새김을 넘어 6.25의 아픔을 온전히 극복하기 위한 일관되고 합리적인 전략이 곧 6.15의 시대정신임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6.15의 힘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국 올바른 정치세력을 선택하고 정치권력을 교체하는 길 외에 현실적 대안이 없음 또한 실감하고 있다. 민주화의 결정적 계기였던 6.10의 정신이야말로 우리에게 6.15의 정신을 되돌려주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근식 - 경남대 교수, 정치학>

바로 말한다. <한겨레> 구독자가 100만명이 되면 한국 사회가 바뀐다.
뭔 얘기냐고? 이 땅의 저널리즘 문화는 이미 시궁창이 됐다. <미디어 오늘>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공동으로 실시한 공무원 미디어 수용 실태 조사 결과, 공무원들이 가장 신뢰하는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이라고 했다. 3위인 <조선일보>는 한참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이 근무처에서 가장 많이 구독하는 신문은 조선일보다. 공무원들 대다수가 “구독하고 있는 신문들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상사의 지시로 신문 구독을 결정하니 이건 병든 저널리즘 현실이다.
‘보수’를 참칭하면서 “정의 옹호”와 “불편부당”을 주장하는 기득권 신문 조선일보의 구독자가 140만명이 겨우 넘는다는 최근 기사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동안 조선일보가 이 정도 구독자 수를 두고 나라를 흔들겠다고 긴 시간 떠들어댔단 말인가? “민족의 표현기관을 자임”한다는 또다른 기득권 신문 <동아일보>나,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로 한국 언론 중 가장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었다”고 역시 주장하는 <중앙일보>는 구독자가 훨씬 더 적다.
<한겨레> 정기구독자 100만이면 세상은 달라진다. 사회는 오늘보다 훨씬 정의롭고, 피눈물 흘릴 사람의 절대숫자는 준다.
따라서 이 땅에 언론의 정도를 확연하게 지키고 가꾸어야 할 한겨레의 책임은 막중하다.
더구나 후퇴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최선의 노력까지 <한겨레>는 사명으로 더 짊어지게 됐다.

이런 당위의 입장에서, <한겨레>는 독자와 만나는 접점을 새롭게 점검할 시기다.  종이신문의 현실적 한계가 있고 신문시장 구조 자체가 왜곡된 현실이지만, 인터넷 웹신문과 종이신문의 차별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만 한겨레를 보지 않고, 나서서 한겨레의 종이신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과연 있는가?
젊은 세대들에게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을 넘어 공감하는 신문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역동적인 기획, 보도의 기동성과 함께하는 예리한 통찰과 대안, 가치의 확산과 공유, ‘왜?’와 ‘다음은?’을 정확히 짚는 기사의 깊이(분석)와 넓이(세계성), 종합적이고 치밀한 신문 편집전략의 안출을 통해 여타 신문과 차이를 두는 사진·레이아웃·타이포그래픽 등 시각 이미지의 과감한 파격성과 현대성, 격조 있지만 신선한 아트디렉션, 문제를 리드할 수 있는 전위성, 이를 뒷받침하는 신문 경영체제의 입체적인 분석과 최적화, 경영혁신의 구체적 방안, 회사의 철학과 경영이 유리되지 않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과 내부개혁, 한겨레 전 직원의 정체성과 통합성, 지속적인 긍지와 뒷받침, 이런 문제를 항시적으로 개선·극복하고자 하는 시스템, 신문 정기구독자 증대로 신문수입에서 광고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의 조정…, 곧 <한겨레>는 어떤 가치와 어떤 존재방식으로 지금 신문을 만들고 있는지 새삼 질문한다.

올봄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이 부수 400만의 독일 최대 일간지 <빌트>를 고발하는 기획취재 기사를 연재했다. 기득권 세력의 선전도구 노릇으로 언론을 부패시키는 죄상을 같은 신문업종에서 공격하고 나선 것은 단지 간섭 차원이 아니라, 민주주의 공동체 파괴를 묵과할 수 없다는 언론의 역할 때문이었다.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조.중.동의 보도 행태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를 넘어 이제 이들 신문 자체가 권력의 헤게모니를 꾀하는 ‘기관’이 된 듯하다. 저널리즘 문화를 일대 혼돈 속에 빠뜨리며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왜곡시키는 이들 신문을 <한겨레>는 계속 두고 보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 김상수: 작가·연출가 >

국회 사법개혁특위가 결국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 핵심 쟁점을 관철하지 못한 채 1년4개월여의 활동을 접게 됐다. 특별수사청 설치와 대법원 구조 개편 등 4개 미합의 쟁점은 법사위로 넘겨 계속 논의한다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사법개혁 논의에 가장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청와대다. 지난 3일 사개특위 검찰소위가 우여곡절 끝에 중수부를 폐지하기로 합의했으나 뒤늦게 청와대가 끼어들어 사실상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일이 어그러진 것이다. 검찰을 개혁하기보다 통제권에 묶어두어 임기 말 권력누수를 막겠다는 저의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모처럼 여야 합의로 진행되던 논의에 찬물을 끼얹음으로써 개혁의 좋은 기회를 무산시키고, 우리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알아야 한다.

사개특위 의원들의 책임도 크다. 특히 검찰 출신 일부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 발언 이후 “나는 중수부 기능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는 등 과거 속기록 발언까지 부인함으로써 무소신과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야당 의원들도 여당 일부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대국민 설득에 실패함으로써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야 새 원내대표 역시 취임 후 첫 과제인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실상 사개특위를 좌초시킴으로써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특히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견해 표명 이후에도 이를 타개할 아무런 정치력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앞으로 국회 운영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됐다.
법원과 검찰 모두 기득권을 지키려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지만 그중에서도 검찰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사개특위의 중수부 폐지 합의 뒤 중수부 검사들이 수사를 중단한 것이나 검찰총장이 잇따라 간부회의를 열어 저항한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나아가 검찰 스스로 권력화했음을 만천하에 시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하다. 중수부가 돌연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뛰어들고, 사개특위 위원들을 겨냥한 듯한 언론보도가 잇따른 것에 대해서도 검찰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검찰과 국회 등 정치권은 그랜저검사나 스폰서검사 등 사건이 일어나면 모두 나서 엄청나게 바꿀 듯이 개혁을 외치다가 국민들 기억에서 흐릿해져 갈 무렵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뒤엎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이제는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뒤늦게나마 야당은 물론 여당 소장파들도 사법개혁을 다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여야 원내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해 사법개혁을 최종적으로 결단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시민들이 나서서 사법개혁 반대 의원 낙선운동이라도 벌이는 수밖에 없다.

[사설] 파리의 밤 달군 K-POP 열풍

● 칼럼 2011. 6. 19. 16:18 Posted by Zig
한국 K-Pop 가수들이 지난 주말 프랑스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애초 하루만 하려 했던 공연을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요구로 하루 더 추가했을 정도다. 현지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K-Pop이 파리에서 성공적인 유럽 데뷔를 한 것은 그 열기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대세는 놀라운 확장세로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한국의 수출이 자동차와 전자상품을 넘어 이제 문화에까지 도달하게 됐다는 프랑스 언론의 평가도 나왔다. K-Pop은 이미 문화산업적으로 엄청난 비즈니스가 됐다. 그런 기대도 있지만 한류를 이어가고 한국 이미지를 알리는 얼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K-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파고든 요인은 특유의 역동적인 춤과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외국의 유망주도 발굴해 K-Pop에는 국경이 없으며 잘 기획된 상품으로서 콘텐츠 파워가 핵심이다. 다국적 그룹이 이끄는 글로벌한 사운드와 초국적 이미지로 세계 음반시장 변화에 대응한 대형 기획사들의 매니지먼트 전략이 뒷받침됐다. 오디션을 통과한 연습생들은 노래와 댄스, 연기, 외국어 등을 몇년간 훈련받은 뒤 한 그룹의 멤버가 된다. 여기에 유튜브·페이스북 등 새로운 미디어의 힘을 등에 업으면서 유통에서 국경의 장벽을 훌쩍 넘은 점도 한몫하고 있다.

<르몽드>는 K-Pop 전사들이 종종 초등학교 때 발굴돼 스파르타식 훈련을 하며 성형수술 같은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되기도 하고 몇년 만에 활동을 접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무대 이면에는 거대 문화자본과 철저한 경쟁 및 상품화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열기와 환호도 좋지만 아이돌 문화만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문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상품뿐인 문화 콘텐츠 수출에 집착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하나로 묶어내도록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