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양성대장염 재발"근현대 최장기 독주 정치 종지부

 후임자 경쟁 본격화 아베 "영향력 행사하지 않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건강 문제를 이유로 28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 근·현대 정치에서 최장기간 이어진 독주 체제가 곧 막을 내리게 됐다. 집권 자민당 각 파벌은 차기 총리 자리를 목표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거의 8년 만에 일본 총리가 교체되면 한일 관계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날 사임발표에서 건강문제인 지병을 이유로 내세웠으나, 최근 바닥까지 추락한 지지율로 사실상 식물총리라는 평을 들을 정도여서 사임은 불가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 대응 실패를 비롯해, 경제정책 실패와 각종 부패 스캔들, 올림픽 개최 차질 등과 함께 평화헌법 개정을 강행하려다 일본 내 평화세력 반발은 물론 주변국과의 마찰 등 그의 극우적 독주 스타일이 결국 파국을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베 총리는 28NHK로 생중계된 가운데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8월 초순 궤양성대장염의 재발이 확인됐다""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중학교 때부터 궤양성대장염에 시달렸으며 1차 집권기(20069262007926·366) 때 이 병을 이유로 사임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약과 새로운 약을 투여하기로 했고 이번 주 초 검사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어느 정도 계속 투약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병과 치료를 떠안고 있어 체력이 완전하지 않은 고통 속에서 중요한 정치 판단을 그르치는 것,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 여러분의 부탁에 자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이상 총리의 지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사직을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올해 6월 건강 검진에서 궤양성대장염 재발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달 17일과 24일 게이오대(慶應大)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을 계기로 24일 사임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28일 오후 일본 도쿄 중심지 긴자(銀座)에서 아베 총리의 사의 표명 소식을 전한 마이니치 신문 호외를 보고있는 시민들.

다만 즉각 사임하지 않고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강 이상설은 이달 초 일본 주간지 '플래시'가 아베 총리가 집무실에서 피를 토했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고 이후 병원 방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산했는데 한 달도 안 돼 사의 표명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일본 주요 언론은 이날 호외를 찍어냈고 NHK 등 일본 방송사는 특보를 편성했다.

사임회견 1시간 내내…… 한일관계는 언급도 질문도 없었다

강제동원 해법 등 양국 입장 달라 정책전환엔 상당시간 소요

28일 총리관저에서 사임의 뜻을 밝히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독특한 역사수정주의를 내세우며 한-일 관계를 격랑 속으로 몰고 갔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78개월에 걸친 긴 집권을 끝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상 최악이라 평가되는 한-일 관계의 미래에도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28일 오후 5시부터 1시간에 걸쳐 사임 기자회견을 열면서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남기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해결하지 못해 통한의 극치란 표현을 사용한 3대 과제는 자신이 필생의 과업이라 거듭 언급해온 개헌과 일본인 납치 문제, 러시아와 평화조약 체결(쿠릴열도 남단의 섬 4개에 대한 러-일 영토 갈등 해결)이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이 이전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할 때 납치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며 자신의 성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 이름을 짧게 거론하는 데 그쳤다. 일본 기자들도 한-일 관계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이는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과 코로나19 위기 대응 등으로 한국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졌음을 방증한다.

앞으로 한-일 관계에 생길 변화는, 누가 아베 총리의 뒤를 이어 차기 총리 자리에 오르느냐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차기 총리와 관련된 민감한 질문엔 내가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 “당 집행부에 모든 것을 일임했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엔에이치케이>(NHK) 등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에게 후임 총재 선거의 방식과 일정에 대해 일임했다다음달 1일 열리는 당 총무회에서 정식으로 결정 내리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일본은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어, 자민당 총재가 자동으로 총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현재 한-일 갈등의 핵심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달라, 차기 총리가 타협적인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18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한국이 조기에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 사람의 의원으로 계속 활동하겠다. 여러 정책 과제 실현을 위해 미력을 다하겠다며 총리 사임이 곧 정계 은퇴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특히 단장(장이 끊어질 듯한)의 마음이란 표현까지 쓴 개헌과 관련해선 유감스럽게도 국민적 여론이 충분히 고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이후에도 한명의 국회의원으로 (개헌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강민석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아베 총리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정부는 새로 선출될 일본 총리와 새 내각과도 한-일 간 우호·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 계속해서 협력해나갈 것이란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 길윤형 서영지 기자 >

선거6번 승리 이끌며 아베 1구축코로나 직격탄에 추락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임기를 1년 앞두고 28일 사임한 데는 중3 때 발병한 이후 50년간 앓고 있는 궤양성 대장염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줬다. 지병은 200791차 집권 때에 이어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내각의 간부들과 자민당은 기자회견 전날까지도 사퇴 불가분위기가 강했다. 28일 오후 2시부터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아베 총리의 사임 결정을 두고 일본 정치권에선 전혀 상상도 못 했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다.

아베 총리는 현재 건강상태로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회복, 내각·자민당 간부 인사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자민당 중견 의원은 “8월 중순 아베 총리가 주변에 전화를 걸어 외교도 잘 안되고 기력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아베 총리가 의욕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고 <선데이 마이니치>가 보도했다. 아베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병 치료를 하면서 체력이 완벽하지 않은데, 중요한 정치판단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사임 이유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연속 재임기간 2799)로 일본 정치사를 바꾼 인물이다. 1차 집권기(366)까지 포함하면 총리 재임 기간만 8년 반이 넘는다. 20069, 전후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다가 1년 만에 조기 퇴진했으나, 2012년 재집권한 뒤 ‘4연임설이 나올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재집권 뒤 여섯번의 대형 국정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며 3연임 기간 동안 아베 1체제를 굳혔다.

201370%대까지 치솟았던 아베 정권 지지율은 현재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코로나19 부실 대응, 측근 비리, 도쿄올림픽 연기 등 잇단 악재가 겹쳤지만,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실패, 무리한 평화헌법 개정 추진, 부적절한 공금 사용 의혹 등 정권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아베 총리가 적극 추진했던 외교 정책도 진전이 없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남쿠릴열도 4개 섬 반환 관련 러시아와의 협상 등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문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은 경제 보복, 안보 불안까지 이어져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다.

장기 집권에 따른 폐해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아베 정권이 2014년 내각인사국을 새로 만들어 중앙부처 간부 인사를 장악하면서 관료가 총리관저에 아첨하는 손타쿠 정치가 횡행했다. 2017~18년 아베 정권을 흔들었던 모리토모학원 스캔들당시 재무성이 공문서를 변조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베 내각에서 방위상을 지낸 나카타니 겐 자민당 중의원 의원은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 임기가) 너무 길어서 국민이 완전히 질리고 있다총리관저가 무엇을 해도 반응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김소연 기자 >

포스트 아베 누가?, 스가? 이시바? 3인물?

아베 의중엔 스가여론조사는 이시바 선두

아베 신조 총리가 28일 지병 재발을 이유로 돌연 사임을 발표함에 따라 포스트 아베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는 일본 정치 구조상, 국민적 지지 못지않게 여당인 자민당 의원들의 의향이 중요 변수로 작용한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음 자민당 총재로 누구를 뽑느냐는 (자민당) 집행부에 맡기기 때문에 내가 말할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당내 최대 파벌을 이끌며 아베 1강 체제를 구축해온 아베 총리가 후계자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의 움직임도 포스트 아베 향방과 관련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168월부터 현재까지 역대 최장수로 자민당 2인자인 간사장을 맡고 있다. 자민당은 이날 임시 임원 회의를 열어 아베 총리 후임을 뽑을 총재선거 일정과 방법을 니카이 간사장에게 일임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여론조사상으로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우위지만 실제로는 셈법이 복잡하다. <지지통신>이 지난 7~10일 유권자 1977(유효 응답률 63.7%)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다음 총리로 적합한 인물 1(24.6%)가 이시바 전 간사장이었다. 그는 2012년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당원 투표에서 아베 총리한테 이기고도 의원 투표에서 뒤져 최종적으로 패한 이력이 있다.

자민당 규칙을 보면 당 총재는 참의원과 중의원, 당원이 참여하는 당 대회를 열어서 선출한다. 다만 임기 중 사퇴 등 긴급을 요하는 경우 중의원·참의원 그리고 각 광역지자체 자민당 조직 대표 표를 합산해 후임자를 선출할 수 있다. 당내 주요 파벌의 지지 여부가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이유인데, 자민당 내 최대 파벌 호소다파의 수장인 아베 총리와 두번째 아소파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이시바 전 간사장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여러 변수를 고려할 때 최근 부쩍 포스트 아베로 거론되는 인물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다. <지지통신> 여론조사에서 스가 관방장관은 6(4.5%)에 그쳤지만, 최근 주간지 <주간 문춘>(슈칸분슌)은 아베 총리의 의중에 있는 사람이 스가 관방장관이라고 보도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와 함께 아베 2차 정권을 처음부터 지탱해왔고, 관료 장악 능력이 뛰어나다.

자민당 보수 본류를 잇는 파벌인 기시다파를 이끄는 인물인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도 빠짐없이 총리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아베 총리에게 협조적인 자세를 보여온 터라, ‘선양을 바란다는 관측이 많았다. 이 밖에 고노 다로 방위상,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등도 포스트 아베 후보군으로 언급된다. < 조기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