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방미 결산

한-미 동맹을 공고히하고 대북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

안정적으로 대미-대북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 마련했다 평가

 

방미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미국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면 정상회담 등 3박5일간의 미국 순방 일정을 마쳤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면서 한-미 동맹을 공고히하고 대북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3일 귀국길에 오른 문 대통령은 미국의 한국군 55만명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과 성김 대북특별대표 임명을 ‘깜짝 선물’로 꼽았다. 미국 백신개발기업 모더나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협력 등 ‘백신 글로벌 생산 허브’ 구상은 현실화했지만 문 대통령은 백신 물량을 더 확보해 와야 한다는 국내 요구를 실현시키지 못했다. 한국이 방역 선진국이라는 미국 내부의 평가가 백신 추가 공급의 발목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한국군 백신 지원은 문 대통령의 ‘빈 손’을 면하게 해준 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보다 공공의료 체계가 부실하고 확진·사망자가 많은 취약한 국가들이 훨씬 많아 백신 스와프 등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웠다”면서 “미국이 동맹관계 속에서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 한국군에 아무 조건없이 백신을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성김 대북특별대표를 임명한 것도 문 대통령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문 대통령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담판을 짓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의 외교가 실패한 뒤 좀처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건드리는 인권대표가 아닌 북핵협상을 주도할 특별대표를 임명한 건 문 대통령의 북-미 협상 요구에 바이든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화답한 모양새다.

 

이번 한-미 정상 합의가 다음 정부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미-대북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상돈 전 의원은 “임기가 일년도 안 남은 대통령이 뭘 할 수 있을지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해 (실패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어울렸던 한국 대통령의 이미지를 씻어내면서, 다음 대통령이 대미·대북 외교를 하는 데 있어 부담을 덜어줬다”고 말했다.

 

방미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미국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탑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배터리 등 혁신기술 공급망에 동참하고 기후위기, 우주 개발 분야에 협업하기로 한 건 미래 국가적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기술 특허와 탄소세 등 무역 장벽과 밀접한 문제여서 향후 국내 기업들의 성장동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3일 귀국길에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 현장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늘어나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미국과 한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워싱턴/공동취재단


‘대만해협’ 처음 넣고 ‘중국’은 빼 견제수위 조

한중관계 고려 ‘쿼드 참여’ 안꺼내,  중 “선 지켰다”…대만 언급엔 유감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1일 정상회담 뒤 나온 공동성명에는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때와 같이 미-중 경쟁의 지정학적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가 언급됐다. 하지만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중국 견제에 공감하면서도 직접적인 중국 공격은 자제한 게 눈에 띈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미-일 공동성명에 들어간 것과 동일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미-일 공동성명에서는 1969년 이후 52년 만이다.

 

그러나 중국과 관련한 나머지 대목에서는 한-미, 미-일 공동성명 사이 차이가 크다. 미-일 공동성명에는 “우리는 동중국해에서의 현상을 변경하려는 어떠한 일방적 시도도 반대한다” 등 공격적 표현들이 담겼다. ‘중국’이라는 단어가 네 차례 들어갔다.

 

반면, 한-미 공동성명에는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같은 완화된 표현을 썼다. ‘중국’이라는 단어는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성명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대중국 강경 노선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중국에 대한 직접 공격으로는 비치지 않도록 미국과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라는 미국의 압박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다행스럽게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며 “다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한-중 관계의 민감함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국 견제 성격의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의 협의체인 쿼드(Quad)에 한국이 정식으로 참여하는 문제 또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비켜갔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표현으로 에둘렀다.

 

중국 쪽 반응은 두 갈래로 보인다. 중국이 ‘주권의 영역’으로 여기는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를 비판하며 강한 유감을 표시하는 한편, 미-일 정상회담에 견줘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식의 반응도 나온다. 민족주의 성향의 <환구시보>는 미·일 정상이 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를 집중 거론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 쪽은 즉각 입장문을 내어 “미-일 공동성명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맹비난한 바 있다. 반면,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문재인 대통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동시에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며 “미국과 한국이 중국 문제에 대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합의”라고 평가했다.

 

일본 언론들도 한·미 정상이 “대만해협”을 언급한 점을 주목했다. 미-일 정상회담 때와 달리 중국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하지는 않은 점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이 절충점을 찾았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아사히신문>은 한·미 정상이 “대중 정책에서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문 대통령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만 지역의 평화”를 언급한 점을 들며, “이례적으로 깊이 들어간 발언이었다”고 평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중 언론 “한-미 정상 서로 원하는 것 얻어”

대만 문제 민감 반응하나 미-일 회담 때와 달리 ‘이해’ 반응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 연합뉴스

 

한-미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공식 언급한 것에 대한 중국 쪽 반응은 두 갈래로 보인다. 중국이 ‘주권의 영역’으로 여기는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를 비판하며 강한 유감을 표시하는 한편, 지난 미-일 정상회담에 견줘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식의 반응도 나온다.

 

민족주의 성향의 <환구시보>는 공동성명 발표 직후 대만·남중국해 언급을 집중 조명하며, 지난달 16일 미-일 정상이 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를 집중 거론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 쪽은 즉각 입장문을 내어 “미·일 공동성명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미·일 동맹의 폐해를 분명히 보여줬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중 외교부는 아직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어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따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며 “이는 한국의 국익과 동북아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한중 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쳐 후유증이 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서도 “대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협박을 받고 독약을 마시는 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왕젠 <중국중앙방송>(CCTV) 시사평론원은 “과거 한국은 중-미 관계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서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며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 문제를 한국이 먼저 공동성명에 넣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 평론원은 “이번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미사일 협정 폐기, 코로나19 백신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 쪽에 요청할 것이 있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만나서도 ‘위안부’와 강제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 등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며 “결국 양쪽이 서로 원하는 바를 주고 받은 것”이라고 짚었다.

 

관영 <글로벌 타임스>도 “문재인 대통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동시에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며 “미국과 한국이 중국 문제에 대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합의”라고 평가했다. 저우융성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신문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상대적 중립성을 포기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중국에 대항하는 ‘쿼드’에 합류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