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헌법소원’ 결론…탄소중립기본법 일부 ‘헌법불합치’
청구인들 “기후변화가 기본권 문제란 걸 확인” 반겨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현재 정부는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만 세워두고 있는데, 이번 결정에 따라 2050년 이전까지의 감축 목표가 제시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9일 오후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감축할 것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1항이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에 반하여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2050년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시점이다.
다만 이미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해둔 정부의 계획과 그 근거인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대해서만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고, 적어도 정부가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28일까지 2031~2049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내용을 반영해 탄소중립기본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청소년기후소송’(2020년)과 ‘시민기후소송’(2021년), ‘아기기후소송’(2022년)에 이어 제기된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2023년) 등 네 건의 청구를 병합해 내린 것으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기후소송’이라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인·대리인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결정을 반겼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오늘 판결로 우리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기본권의 문제이고 누구나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권리가 지켜질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이제 정부와 국회의 차례”라고 밝혔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국장은 “2031년 이후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것이 헌법 불합치라는 내용이 선고 됐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우리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판결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주 변호사는 “위헌 결정 내용 중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독일 기후 소송처럼 국회의 후속 법 개정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실질적인 강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아기기후소송’에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한제아(12)양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당연히 기후위기에서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며 “이번 판결은 저희에게 주어진 책임도 알려주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저와 같은 어린이들이 헌법소원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번 판결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에 대해 환경부는 이날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 박기용 윤연정 기자 >
'미래세대 기본권' 다룬 아시아 첫 기후소송…일부 인정 결실
청구 4년 만에 "2031년 이후 공백, 미래에 과중한 부담" 헌법불합치
일부 기각됐지만 유럽·미국 판결 발맞춘 첫걸음…일본 등 영향 줄 듯
어린이·청소년에 태아까지, 대한민국 미래 세대들이 주축이 돼 아시아 최초로 제기한 기후소송이 4년간의 심리 끝에 일정 부분 열매를 맺었다.
2031∼2049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공백은 정부가 환경권을 침해한 것으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끌어낸 점에서다.
다만 가장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던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에까지 전향적 판단이 나오지는 않아 첫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기후 위기 헌법소원은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첫발을 뗐다.
이들은 당시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소극적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생명권·환경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이었다.
2021년 10월에는 같은 문제의식으로 시민단체와 정당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22년 6월에는 당시 태명이 '딱따구리'인 20주 차 태아(이후 같은 해 10월 출생)를 비롯해 2017년 이후 출생한 아기 39명과 6∼10세 어린이 22명도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첫 청구 후 4년 만인 올해 4월 이같은 소송을 병합해 첫 공개변론을 열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이 역시 아시아 최초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청구인 측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설정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같은 정부의 대응은 충실하지 못해 미래 세대에게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온실가스 40% 감축 자체가 기존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것으로,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 늦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계·산업계에서 느낄 부담이 크다고 반박했다.
헌재는 20년부터 23년까지 제기된 기후 소송 4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9월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2024.5.21
5월 열린 두 번째 공개 변론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12) 학생이 청구인 대표로 직접 출석해 미래세대 당사자로서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며 어른들의 전향적인 결정을 촉구했다.
결정권을 쥔 재판관들은 2030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감축 목표량이 없으며, 정부 발표상 감축 목표연도와 목표점이 계속 변경되면서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시선을 끌기도 했다.
결국 헌재는 이날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환경권을 침해했으므로 2031년 이후 기간에 대해서도 법률에 직접 규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다만 '2030년까지 40%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비록 전면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다른 국가의 선행 판결에 일부 발맞춘 '첫걸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네덜란드 환경 단체는 정부의 기후 변화 조치가 불충분하다며 2013년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네덜란드 법원은 감축 목표를 강화하라는 이른바 '위르헨다 판결'을 했다. 기후소송의 시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21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55% 감축'이라는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와 의회는 법을 개정해 2030년 감축 목표를 55%에서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를 88%로 신설했다. 탄소중립 시기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당겼다.
이밖에 프랑스, 아일랜드, 미국 몬태나주 법원,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기후 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기후 대책에 대한 정부 정책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우리 헌재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부라도 인정하면서,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대만·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소송 판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연합 이대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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