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직원 임아무개씨 자살 사건은 사안의 중대성 면에서 그 어떤 사건보다도 처리 절차가 투명·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사건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라 할 국정원은 어떤 이유로든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실종 신고에서부터 수색, 현장조사, 증거물 처리 등 모든 절차가 상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지게 진행됐다. 국정원이 처음부터 경찰을 의도적으로 따돌린 채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임씨가 실종된 뒤 국정원이 임씨의 부인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종용한 것부터 국정원의 개입은 시작됐다. 임씨 부인은 국정원의 이런 지시에 따라 경찰이 아닌 경기도 재난안전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에 처음으로 신고전화를 했다. 그리고 소방대원이 매뉴얼대로 112 신고를 권유하자 112에도 신고를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112 신고를 취소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남편을 찾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이런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 것은 국정원의 종용이나 간섭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경찰보다 먼저 임씨 주검이 발견된 현장에 도착해 1차 현장조사를 한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은 소방대원과의 현장 좌표 교신 오류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50분이 지나서야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사이 국정원 직원은 임씨의 주검 상태와 유류품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없는데 국정원 직원이 이런 월권행위를 해도 좋은지도 의문이지만, 과연 사건 현장이 온전히 보존됐는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임씨가 숨진 채 발견된 마티즈 차량이 성급하게 폐차 처리된 과정에서도 역시 국정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론 임씨가 남긴 유서나 부검 결과 등에 비추어 임씨 자살이라는 사건의 근본 성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개입으로 비롯된 이런 비정상적인 처리 과정은 여러 가지 구구한 관측과 뒷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국정원이 정해진 법적 절차나 규정 등을 쉽게 무시하면서도 얼마든지 둘러대고 뭉갤 수 있음이 명확히 드러난 점이다. 그 점에서 국정원은 또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직원 자살 사건에서도 말 바꾸기와 진실 은폐로 일관하는 국정원이 사건의 ‘본안’인 해킹 의혹에서는 과연 정직하게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까. 이런 탓에 아무리 “불법 해킹을 한 적이 없으니 믿어달라”고 해도 믿기지가 않는다.